학습

국립 서울현충원탐방(180626)

dowori57 2018. 6. 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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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좌의 마지막탐방인 현충원이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장마비가 시작이 된다.

이 빗속에서 몇명이나 올까싶지만,서울에 살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더구나 호국의 달이니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우산등 준비를하고 집을 나섰다.

두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현충원을 들어가니 안내하는 분들만 보이고 수강생들이 보이지 않아, 혼자 온것아니냐고

물었더니 안내센터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한다.

장맛비속에 십오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대단한 분들이다. 완전 예상을 깨고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이다.



관악산의 한줄기에 속하는 동작봉은 국립현충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1952년 이승만대통령의 명에 의하여 풍속연구가 지창룡이 세밀한 풍수학적 고찰,지리상 여건등을 고려하여 최종결정하고 재가를 받았다고한다.

공작새가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있는 형국의 공작장익형 명당이라는 평가와 더불어,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앉은

형상인 장군대좌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한다.

동작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에 이곳이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도진의 하나였던 동작진을 '동재기 나루터'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는데 동재기는 흑석동에서 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일대에 구리빛 색깔을 띤 돌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한, 조선11대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안씨의 묘소와 호국지장사,부안군 이석수묘역등이 있어 마지막 문화유산탐방지로 선정되지 않았나 싶다.


내리는 빗속에 육탄10용사 현충비를 시작으로 무연고 위패실을 지나 장병묘역을 지나치는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가지런히 조성된 묘에는 태극기와 꽃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안내하는 강사가 추모하는 마음이야 당연히 가져야지만,너무 비통해야 할 것은 아니고 즐거움 마음으로 찾아와서 죽은자와 산자의 의미와 더불어 우리의 위상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승만대통령의 묘

창빈안씨의 묘

김대중대통령의 묘


창빈안씨의 묘역을 들른다.중종의 후궁으로 중종과의 사이에 영양군,덕흥군,정신옹주등을 두었는데,덕흥군은 조선

14대군주인 선조의 아비로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다.

창빈은 사후 양주땅 장흥에 묘역을 썼으나 이듬해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서자의 아들이란 이유로 여러모로 무시를 받았던 선조는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 아버지와 할머니를 높이는데 

 많은 정성을 들여 할머니에게 창빈이란 시호를 올렸으며,무덤의 격을 능으로 높이고 묘역을 현충원일대로

확장시켜 동작릉이라 했다. 그러나 선조가 승하하자 동작릉은 창빈안씨묘역으로 격하되고 만다.

창빈안씨묘역을 중심으로  이승만대통령의 묘소와 김대중대통령묘소가 좌우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위로 장군1묘역이 있고  장군봉이다. 장군봉을 꼭 들려보라고 안내한다.

이곳이 좌청룡 우백호 중심이고 앞에는 한강이 바라보이는 명당이라고 한다.


장군묘역 위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의 묘소가 자리잡고있다.

제일윗부분에 자리잡은 묘역을 그래도 신경을 써서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사진이 없다.

어찌하다가 삭제가 되어버렸나보다.난감한 일이지만 어쩔수가 없다.

 육여사의 묘역이 좋지않다는 풍수가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박대통령이 장군들 묘역이 내려다 보이는 그곳을

우겨 그대로 묘역을 조성했다고한다.

후손이 잘되고 못되고는 묫자리의 탓도 없지 않겠으나, 자손이 잘되면 묘터가 좋아서고 못되면 묘터가 나빠서이니

우선은 자손이 잘되고 볼일이다.

이곳에 다다르니 준비를 한다고 등산화를 신었는데, 세찬비에 우산을 썼음에도 머리는 젖어들고,이미 신발속은

빗물이 고여 철벅거린다.

 


임시정부요인들의 묘역과 애국지사묘역을 둘러보고 오늘의 강좌는 종료가 된다.

모두들 장대비속에서 진지하고도 열성적인 탐방이었다.

노고를 치하하고는 헤어져 홀로 김영삼대통령의 묘역을 둘러보는데 계단에 흘러내리는 빗물이 폭포수준이다.

다시 길을 돌아 탐방시 지나친 호국지장사를 오른다.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갈궁사로 부르다가 고려공민왕때 중창후 화장암이라 했다한다.

그 뒤 선조가 조모인 창빈안씨의 묘소를 이곳으로 모시게 되자 화장사로 바꾸었다가 1983년에 호국지장사로

고치게 되었다한다.

호국영령들이 지장보살의 원력으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호국지장사로 고치게 된 것이다.

철벙거리는 신발을 벗고 삼배를 올리니 어느분의 천도제인가를 지냈는지 정리중이다.

세시간여 시간이 흐렀다. 제대로 둘러 볼려면 이정도의 시간도 부족한 것 같다.

현충원에 들리면 충혼탑에 헌화만하고 돌아가는 정치인이나, 관심있는 묘역만을 들리지 말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역사와 문화 및 호국영령의 묘역을 찾아보는 힐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강사의 이야기를 세겨 볼 일이다.


김영삼대통령의 묘


우중의 탐방시간이라 내리는 빗줄기와 젖어드는 옷가지,신발속에 들어차는 물 등으로 불편하였지만,

유월이 거의 지나가는 날자에 세시간여 한적한 현충원을 둘러본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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