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 1,2학년시절이었나보다.
어려운 고3시절을 지나고 대학이라고 다녀보니 모든 것이 내 세상 같았다.
어렵게만 출제되어 평균점수가 30여점을 오르락 거리던 고등학교시절이 지나고
대학에 입학하여 다녀보니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다.
시험을 보니 평균70~80점이 나왔고-사실80점이하이면 학사경고로 해당과목을 재수강하여 학점을 이수해야했는데
주변에 놀던 친구들의 점수가 비슷하였으니 우리들은 그 정도면 괜찮은 줄 알았고,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후 미달과목을
전부 재수강하느라 정신없이 학교생활에 모범적이였다.-술,담배를피워도 누가 뭐라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것저것에서 제약받던 시절에서 해방이 된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몇 명 어울려 놀았는데,서울로 진학한 친구,사관학교로 진출한 친구와 재수하여 한해늦은 친구들이
모이면 술과 담배로 시작하여 거나하게 취하면 친구집으로 몰려가 외박을 하곤하였다.
어느 이른 봄무렵 외지에 있던 친구들이 내려와 같이 술 한잔을 하고는 의례하던 식으로 한친구집에서 외박하기로하고
집을 찾아갔다.
끼리끼리 가다보니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장난을 친다고 나중에 도착한 친구들에게 문을 열어주지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같이 간 사관학교친구와 같이 인근의 공원으로 술도 깰 겸 산책을 나섰다.
공원에 도착하니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데이트족들이 끼리끼리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담배도 떨어지고 여친이 없던 우리들은 데이트족들이 아니꼬와,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가짜경찰노릇을 해보기로하였다.
사관학교제복중 경찰복과 비슷한 옷을 입은 친구와 바바리코트차림의 나는 경찰과 형사로 행세하며 담배를 얻기로하고
데이트족에게 접근하여 비상근무중이라 이야기하고 마침 담배가 떨어져서 그런데
담배 좀 얻자고하였더니 수고한다며 흔쾌히 건네주고는 노고?를 위로까지 해준다.
한번이 통하니 간이 커지는법.
그 다음부터 다가오는 데이트족에게 사고가 발생하여 출입을 통제한다고 데이트족들을 돌려보내기
시작하였더니 왠일로 순순히 응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거기에 쾌감과 더불어 스릴을 느낀다.
그것도 잠시, 무료해지니 집으로 가자며 돌아서 친구네집으로 갔는데 또 문을 열어주질 않는다.
여기아니면 잘 곳이 없냐고 호기를 부리며 인근 여관으로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또 심심하니 임검(당시 숙박시설에는 경찰이 수시로 돌면서 신분확인을 하였다)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의기투합하여
옆방부터 돌기시작하였다.
불과 두어번인가 방을 돌다가보니 눈치챈 여관주인이 당장 그만두지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걸음아 나살려라고 줄행랑을 치고 그 후에 어디로 갔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지금생각하면 공무원사칭죄에 해당되는 중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 정도선에서 끝났으니 망정이니 혹 경찰에 잡혀갔으면 어떤처벌이라도 받았을 것이고,
사관학교다니던 친구는 퇴학처분을 받아 인생길이 달라졌을 것이다.
술을 마시노라 시계,카메라,책등을 전당포에 맡기고 술값을 융통하던 시절이었다.
철모르던 어린시절의 망나니 노릇의 기억인데, 사십년도 더지난 일이라 당시 학생들에겐 모든것이 어느정도 양해되던
세상이었으니 망정이지 지금 같으면 바로 감방갈 일이다.
오래전의 망나니노릇의 아찔하고 철없던 시절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떠올려본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