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부터 베껴쓰던 '경의 마음으로 사람을 빚다'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하루한장의 습자지에 책자의 글귀를 베껴쓰다보니 어느사이 두터운
책장의 마지막을 넘긴다.
마지막 글귀로 퇴계의 자명(自銘)를 따라 써 보는데,
높고도 존귀하신 어귀가 가슴에 울린다.
글을 베껴 쓰면서 어른의 고귀하고도 청아한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도 가다듬고 글씨도 늘어가는 것을 느끼니 뿌듯하기도하다.
退溪 自銘
생이대치(生而大癡)--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장이다질(壯而多疾)--장성해서는 병도 많았네.
중하기학(中何嗜學)--중년에는 어찌 학문을 좋아했으며
만하도작(晩何叨爵)--만년에 어찌 벼슬을 탐하였던고.
학구유막(學求猶邈)--학문은 구할수록 오히려 멀어지고
작사유영(爵辭愈嬰)--벼슬은 마다해도 더욱 얽어매네.
진행지겁(進行之跲)--벼슬길에 나가서는 잘못 있었고
퇴장지정(退藏之貞)--물러나서 갈무리는 곧게 하였네.
심참국은(深慙國恩)--나라의 은혜에 매우 부끄럽고
단외성언(亶畏聖言)--성현의 말씀이 참으로 두려워라.
유산억억(有山嶷嶷)--산은 높고 높이 솟아있고
유수원원(有水源源)--물은 끊임없이 흐르누나.
파사초복(婆裟初服)--벼슬살이 벗어나 한가로우니
탈략중산(脫略衆訕)--뭇 사람 비방에서 벗어났구나.
아회이조(我懷伊阻)--나의 뜻이 이렇게 막히니
아패수완(我佩誰玩)--나의 학문 그 누가 즐기리.
아사고인(我思古人)--내가 옛 사람을 생각하니
실획아심(實獲我心)--실로 내 마음과 같구나.
영지내세(寧知來世)--어찌 알리오 다음 세상이
불획금혜(不獲今兮)--지금의 내 마음을 알지 못하리라
우중유락(憂中有樂)--근심 속에 즐거움이 있고
락중유우(樂中有憂)--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네.
승화귀진(乘化歸盡)--조화를 타고 돌아가니
부하구혜(復何求兮)--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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