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도 더웠던 여름이 어느덧 저만치 멀어가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며 새벽녘에는
이불을 찾아야 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기도 한다.
세월앞에서 장사가 없다는 옛말이 있지만,불과 몇일.몇주사이의 기온변화에 대해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덮던 날들이 과연 있었는가 싶기도 하다.
이젠 완연한 가을이다. 집에서 바라보는 평택벌은 누렇게 물들어가고 일부 논에서는 이른 수확을 하기도
한다.
추석이 이주정도 남았으니 벌초를 하여야 한다. 해마다 고향을 지키는 중형이 벌초를 도맡아서 해왔으나
이제는 퇴직도 하였으니 대구의 부모님께 인사겸 안동에서 벌초계획을 세우나,추석에 올 것이니 벌초만 하는
일정으로 수정이 된다.
평일아침 출발한 고속도로는 정체하나 없이 물흐르듯 흘러 약속시간에 고향에 도착한다.
중형의 집에서 차한잔을 마시고 장형과 중형부부,우리부부가 차 한대로 벌초를 하러 시골로 달린다.
이장한 3기의 묘소를 벌초하려니 시골의 친척동생이 자기가 할 걸이니 윗쪽의 다른 산소의 벌초를 하란다.
두시간여의 시간을 단축한 셈이다. 큰아버지내외분 산소와 작은아버지산소,조상의 묘소2기를 벌초하니
시간이 훌쩍지나 점심시간이다. 미리준비한 김밥과 닭튀김,과일등으로 속을 채우고는 옆쪽의 산소로 이동한다.
다시 차를 타고 다른 산소로 이동하여 벌초를 한다.
금년여름이 유별나게 덥고 가물어서 그런지 잡초가 예년보다 훨씬 적게 자라 그나마 작업이 조금 수월하다.
오래전 헐값에 팔아버린 산이 개발된 모습을 보니 어떻게던 지켜 보관하였으면 싶었지만,지나간 일을 어찌
되돌릴 수가 있는가...
3형제가 열심히 움직여 몇군데 산에 분산되어있는 9기의 묘소를 하루에 걸쳐 마무리한다.
이미 저녁시간이다.
안동댐부근의 매운탕집을 찾아 얼큰한 매운탕에 소맥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장형은 출근으로 버스정류장으로 모셔드리고 사우나로 가서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 흘린땀을 씻어내린다.
중형집에서 다시 술한잔에 이런저런이야기를 나누다가 열두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조식을 먹고는 중형의 농장으로 이동하여 두어달 전에 조성한 부모님과 형제들의 묘자리를 살펴본다.
선산의 농장초입 언덕에 널찍하게 조성하여 부모님을 위시하여 형제들이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젠 죽어 묻힐자리까지 결정되어있는 몸이라 생각하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적지않게 살아온 날들이다.
묘로 올라가는 언덕을 깎아 엉성한 계단을 만들었더니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면서 엄청나게 땀을 흘렸다.
어제보다도 더욱 덥고 습한 기온이다.
둥목으로 땀을 씻어내고는 고기를 구워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식후 남아있는 3기의 묘소 벌초를 마무리 짓고는 농장을 돌아보며 가지정리 작업을 한다.
동네와는 떨어져 산속에 있는 농장은 하루종일 있더라도 사람하나 보이지 않고 한적한 곳이다.
젊음이들이 없는 시골은 거의 노인네들이 고향집을 지킬뿐,예전처럼 활기차고 왕성하던 곳이 더이상 아니다.
금년 벌초를 이틀간에 걸쳐 마무리짓고는 봉정사앞 칼국수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는 귀가길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이 푸근한 벌초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