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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년기 추억(141202)

dowori57 2014. 12. 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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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객지에 나와 있는 자식을 빨리 혼인시키고자 부모님이 걱정하신 덕분에 입사하고 6개월 만에 아버지의 소개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사귄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결혼하였다. 자취와 하숙을 하면서 하숙집 아줌마가 소개한 여자들도 있었는데 재력을 자랑하는 것 같아 시들해진 차에 6.25일에 초등학교 교사를 만나 당일 송도로 보트를 타러 다녔고, 그 후 자주 만나 근교로 놀러도 다니고 하다 보니 내 짝인 것 같아 약혼식을 하고 84년도에 결혼하였다.
 
 
허니문 베이비로 큰애가 태어나 신혼집을 역곡 빌라에서 처갓집 근처인 신길동으로 옮기니 방 한 칸에 구식 부엌 하나가 전부였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아침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니 불편하기 짝이 없고 샤워 시설도 없어 여름엔 부엌에서 대충 씻었지만, 겨울엔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 며칠에 한 번 목욕탕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그 집에서 둘째를 갖고 아파트 전세로 옮겼으며 큰애는 장모님이 둘째는 처형과 처가 친척이 돌보아 주었다. 둘이 노력한 덕에 바로 같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하였고, 88년인가 중고차를 사 일 년 정도 타다가 신형 르망으로 바꾸어 탔다. 애들 어린 시절은 틈만 나면 야외로 드라이브를 줄기차게 다녔으며, 당시에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아 체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야외로 돌아다닌 것이 많은 추억거리이나 정작 아이들은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삼십 대에 마이홈과 마이카를 가졌으니 대학 다닐 때의 꿈을 어느 정도는 이룬 셈이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났으니 윗세대보다는 덜하지만, 세월의 풍파를 많이 겪었다. 어릴 적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부친 덕에 그렇게 어렵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우윳가루 배급, 급식빵 배급을 받았고, 돈 구경하기 어려워 아이스케키를 고무신과 고물 등으로 바꿔 먹었다. 초등학교 시절 몇 마리 닭을 키운 덕에 달걀을 몰래 빼돌려 가게로 가져가면 눈깔사탕 몇 개와 바꿔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는 연탄도 없어 순전히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겨울철이면 운동장에 떨어지는 수양버들 가지와 근처 야산으로 솔방울을 따러 온 식구가 동원되기도 하였다. 겨울이면 군불을 따뜻하게 넣고 밭에 묻어둔 무 꺼내오기 화투치기도 하였고, 조금 형편이 나으면 두부를 사와 뜨거운 물에 끓여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때 광석 라디오를 보고 신기해하였으며, 승용차나 GMC 트럭이 나타나면 구경 다니던 시절이었다. GMC 트럭 기사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시동을 걸 때면 조수가 수동으로 지렛대(?)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그러한 것도 대단한 구경거리였던 시절이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야외극장이 개설되어 '대한늬우스'라도 보면 미국의 고속도로가 차로 붐비는 것은 장관이었고 삼일빌딩 옆 고가도로로 차가 줄지어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라면도 처음 나와 그 맛이 신기하기도 하였거니와 구하기가 어려워 라면 하나에 국수를 섞어 끓여 나누어 먹은 기억도 있다. 하기야 60년대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현실이었고 고깃국이라고 끓여 봐야 국물과 채소만 무성하고 고기를 찾으려면 한참을 휘저어야 보이곤 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휴대폰이 나온 시절이지만, 가끔은 불편하던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봄이면 뒷산으로 진달래 따 먹으로 다니고, 여름이면 시냇가에서 홀라당 벗고 수영을 하였으며, 가을이면 풍성한 추수와 함께 운동회를 기다렸고, 겨울이면 벼를 베어낸 논에 물을 가두어 스케이트를 타며 철없이 놀던 그 시절이 가마득한 세월의 꿈속에 머무는 것 같다. 
 
 
지금의 물질적인 풍요와 환경은 옛날 임금보다도 더 좋을 것이다. 사시사철 계절과 무관하게 제철 과일이 아닌 것을 수시로 먹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만들고, 겨울이면 난방이 되는 아파트에서 크게 부족함을 모르고 지내는데 어찌 옛 군주의 풍요에 비할까 싶다. 그럼에도 마음 한 곳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정신의 빈곤을 느껴서인가?
 
 
흐르는 세월은 유수 같다고 하였다. 가끔은 인생 대선배의 글을 접할 때는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되어 대단히 미안하고 송구할 때가 있지만 어찌하겠는가?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세월이 흐른 먼 후일 돌아보면 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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