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

8.젊은날의 추억(141125)

dowori57 2014. 12. 8. 11:09
728x90
반응형

 

 

나는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몇 군데의 초등학교를 다니다 중학을 졸업하고 대구로 유학하여 고등학교 및 대학을 다녔다. 심리적으로 빡빡한 고교 시절을 지내고 대학에 입학하니 완전한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고교 시절 예비고사와 대학 입학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공부도 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에다 자취 생활을 하면서 상당히 소극적이었고, 대학 준비를 위해 고교 시절 시험은 상당히 어렵게 출제되어 수학의 경우는 반 평균이 50~60점에 머물거나 그 이하인 적도 다반사였다.

 

그런 시절을 보내다 대학을 입학하니 어깨에 힘도 들어가려니와 별반 제재하는 사람도 없고 놀자판인 동료들과 술로 거의 반 학기를 보냈다. 그러고 시험이라고 쳐서 성적을 받아보니 70~80점 수준. 고교 시절만 생각하고 또한 동료들의 성적을 보니 거의 비슷한지라 대학 생활이 별것 아니구나 생각하고 더욱 놀기에 전념(?)하였다.

 

너무 과하게 놀았다 싶어 어떤 날은 모처럼 공부를 하려고 강의실로 등교하자면 학교 후문 주변 술집에서 아침부터 진을 친 동료들이 한잔하자는 소리에 발길을 돌리거나, 가을에 낙엽이라도 떨어지고 캠퍼스가 황금빛으로 물들면 고속 터미널로 가서 경주행 버스를 탔다. 대구에서 경주가 당시 45분 거리였고 경주 터미널에 내리면 소주 한 병과 오징어를 사서 김유신 장군 묘소까지 걸어가 묘역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낭만을 즐긴다고 술잔을 기울이다 돌아오곤 했다.

 

그 와중에 서클 생활도 하면서 농촌봉사활동과 단합 대회 등도 열심히 하였고 미팅도 몇 번 하였으며 마음에 드는 여학생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대시하여 사귀지는 못하였다. 겨우 2학년 때 만난 간호학교 학생과 1년인가를 사귀었을 뿐이다.

 

그러한 2년을 보내고 나니 학사경고라는 별(?)이 두 개나 붙은 전과자가 되었고, 정신을 차려야 함에도 주변 친구들이 거의 비슷한지라 태평이었는데, 마침 둘째 형이 군대에서 제대하여 성적을 보고 당장 입대하라고 하여 바로 휴학하고 반 학기를 무위도식하다 포항에서 집결하여 논산에서 훈련을 받았다.

 

고교 때 친구들과 많은 술을 마셨고 가난한 학생 신분이라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현금을 융통하거나 사관학교에 다니던 친구의 반지를 맡기거나 집의 카메라도 맡기고 외상술을 먹었다. 언제가 친구들과 유원지에 놀러 가서 식당에서 술을 마시는 중 과음으로 모두 쓰러지고 맞은 편에 한 친구가 앉아 버티길래 한 잔 먹고 일어나 한 바퀴 돌고 또 한 잔 하며 내기 술을 먹다가 화장실에 가던 중 쓰러져 의식을 잃고 친구 집으로 옮겨져 이틀인가를 퍼져 잔 적도 있었다. 이틀 후 깨어, 라면 하나를 겨우 먹고 집으로 가던 중 그것마저도 토해 내었다. 거의 치사량까지 마신 것 같았는데 그때 죽을 팔자는 아니었는가 싶다.

 

입대 전 친구들이 위로 여행을 가자고 하여 당시에는 거금인 일인 당 이만 오천 원을 들고 지리산을 중산리에서 올라 도중에 비가 쏟아져 법계사 아래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일박하면서 놀고 이튿날 법계사에서 공양하고 천왕봉을 올랐다. 중산리로 하산하여 총무를 보는 친구에게 사정(?)하여 소주 몇 잔을 마셨는데 이틀을 부실하게 먹어선지 모두 취하여 계곡의 바위 위에 누워서 구토하고 바라보는 밤하늘의 달이 매우 밝았었다. 송창식의 송학사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돈으로 부산을 경유하여 포항에서 통통선을 타고 근 열 시간을 달려 울릉도행. 성인봉을 오르고 분지를 종주하여 맞은편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보내다가 돌아온 기억이 선명하다. 맨손으로 오징어인지 문어인지를 잡은 기억도 있다. 거의 36년 전 이야기이다.

 

울릉도 가는 배 안에서 한 아가씨를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군 신분이었고 며칠 후 입대한다는 생각에 헤어질 때 연락처를 받아 훈련소에서 연락하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대전 통신학교 교육 시 육본에서 전화 연락이 와서 교육관이던 장교가 연병장을 건너 뛰어와 알리고 또 연병장을 뛰어가 받아 보니 그녀였다. 그로 인해 훈련소에서 육본과 연결된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후에 자대인 서울로 배치를 받으면서 그녀와 더욱 가까워지고 자주 보게 되었다. 외출, 외박 시 지방에 있는 집을 매번 갈 수가 없어 자주 만나 놀고 하면서 가난한 군인 신분으로 그녀의 신세를 많이 졌다.

 

제대 후 3학년에 복학하니 1, 2학년 성적은 학사경고를 3번이나 받았으니 엉망이고 나이는 들고 곧 졸업이라니 발등에 불이 떨어져 아침에 집을 나와 도서관에 자리 잡고 수업시간 외에는 도서관에서 저녁 늦게까지 진을 치고 살았다. 그 덕에 복학 후에는 장학금도 타고 제법 성적이 괜찮았으며 다행히 졸업 직전에 취업이 되었다.

 

그렇게 환경이 바뀌니 그녀와는 자연 소원해졌고 그녀 입장에서는 나의 마음이 멀어진 것이라 느꼈으리라. 나도 마음과는 달리 자주 연락할 수가 없는 처지고, 앞날도 생각해야겠고, 고민하다가 그만 만나자고 장문의 편지를 보내었다.

 

그 다음 날인가 도서관에서 나와 늦게 귀가하는데 아파트 입구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와 있다가 내가 없으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이미 편지는 발송되었고 또 미래에 대한 대비 등 전처럼 할 수는 없는 환경이라 현실을 이야기하고 당분간 헤어지자고 했다. 그녀는 밤새워 울었다고 같이 잔 형수가 다음날 이야기하였다.

 

다음날 서울로 배웅하러 동대구역을 나갔더니 개찰구 앞에서 내 손을 잡고 손에 입맞춤하고 간다고 인사한 것이 그녀와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초로의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고 결혼하여 잘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728x90
반응형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장년기 추억(141202)  (0) 2014.12.08
9.노년에 멋있게 살기(141127)  (0) 2014.12.08
7.여름힐링-아름다운동행을 읽고(141118)  (0) 2014.12.08
6.고맙고 감사한일(141113)  (0) 2014.12.08
5. 고구마캐기(141105)  (0) 2014.12.08